체코와 폴란드 접경 지대에 있는 스키장

2012년 1,2월 힘든 기말감사 시즌  때때로 위안이 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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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Economist의 크리스마스 에디션을 읽었다.
그런데 요즘 서구의 추세에 따라 Holiday Double Issue로 제목이 바뀐 것 같다.
그래도 작년과 같이 1년간 갈고 닦은 칼럼이 잔뜩 있는 건 변함이 없다.
연말연초 바쁜 시즌에 이걸 읽은 적은 별로 없었는데
유독 저번주 광주로 출장가고, 오늘 대구로 출장가고 하면서
KTX에서 시간 떼우기로 많이 읽었다.

역시 Economist의 칼럼은 다른(특히 국내) 잡지와 비교해서 심오(?)한 면이 많다.
오늘은 이것에 정신이 팔려서 이어폰까지 잃어버렸으니
본전 찾는 마음으로라도 머리 속에 불쑥 불쑥 나타난 생각을 정리해 보련다.

영어 실력이 부족한 관계로 여기 저기 나타날 오역과 왜곡에 대해서는 책임 못진다.

1. 손자(孫子)를 소프트파워로 이용하려는 중국

Sun Tzu and the art of soft power 
하드파워는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중국이 부족한 소프트파워를 메우기 위해서 손자를 띄운다는 칼럼이다.
공산주의와 모택동은 철지난 이론이고,
현재의 권위주의적 정치체계 또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한다.
결국 과거의 사상에서 소프트파워의 원천을 찾는데
불교, 도교, 유교와 같은 사상은 그래도 명목상 중국의 정치이념인 유물론적 사회주의와 맞지 않아 한계가 있으니
(불교는 더구나 달라이 라마와 연결된다!)
그나마 서구에서 인기가 있는 손자를 띄운다는 어찌보면 안타까운 이야기다.

굳이 중국에 소프트파워가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아까운 지면을 낭비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세계적 신용위기 속에 홀로 멀쩡히 성장하는 중국에 대한
서구인의 부정, 질투, 질시, 오만, 불안 등등의 감정을 달래주기 위해서 하나 던져 준 거 같다.
이거 말고도 왜 중국 국대 축구가 그렇게 못하는지 까는 기사도 있다...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한국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자면
관광 수입을 올리기 위해 손자의 출생지를 두고 서로 다투는 두 지방 도시의 이야기를 보니
손자를 홍길동으로만 바꾸면 한국의 어느 지방자치체 간의 싸움과 다를 게 전혀 없다.
과거의 전통 가치 체계가 붕괴하고 자본의 논리만이 판을 치는 것이다.
씁쓸한 풍경이다.


2.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의 종교 & 마틴 루터와 SNS의 비교

The founding fathers' religious beliefs
How Martin Luther went viral

내용은 다르지만 둘 다 신화화된 대상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주제에서는 동일한 것 같다.

처음 칼럼은 미국의 founding fathers에 대한 신화를 벗겨준다.
미국의 보수층은 미국이 기독교 정신으로 건국되었다고 주장하고
(적어도 당시 대다수 민중의 기독교적 열망이 미국 건국에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미국의 진보층은 founding fathers들이야말로 세속주의자였으며
세속주의야말로 진정한 미국의 정신이라고 보수층을 비판한다.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적어도 대다수 founding fathers는 이신론자들이었고,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매우 중요하게 나타나는 등 기독교적 색채는 거의 없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세속주의의 이념에 충실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단지 독립 13개 주간에 종교, 이념 등 다른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갈등의 요소를 없애기 위해 세속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실제 founding fathers의 성향도 제각기 달랐으며 또 실제 행동을 보면 세속주의에 충실한 것도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버지니아의 성공회 공동체에 대한 탄압은 상당했었다.
Founding fathers의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실용주의가 맞을 거라고 끝맺음을 한다.

두번째 칼럼은 현재의 소셜 미디어 열풍에 대한 신화를 벗겨준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SNS가 마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현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SNS 열풍과 유사한 현상이 이미 16세기 유럽에 나타났다고 한다.
또다시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마틴 루터의 '95개 논제' 배포로 시작된 종교개혁의 진행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의한 정보의 유통과 매우 유사했다고 한다.
즉 SNS의 확산은 역사상 전례가 없던 대사건이 아니다.
단지 도구가 더 효과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어떤 대상을 신화화한다는 것은 대개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보수층은 자신들의 복음주의적 정치 이념의 지지를 받기 위하여 founding fathers를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신화화한다.
이들에 대항하기 위하여 미국 진보층은 founding fathers를 충실한 세속주의자로 신화화한다.
사실 founding fathers라는 것도 미국 국민의 정체성을 형성시키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신화화된 용어일 것이다.  
당장 미국만 벗어나도 그들을 인용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잡스의 애플은
물론 대단한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마크 저커버그나 스티브 잡스를 마치 선지자와 같이 신화화하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금융위기 이후에 미국에서 그나마 경쟁력이 남아있는 분야가 IT이기 때문에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 언론에서 의도적으로 SNS나 아이폰을 띄운 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의 신화화는 대단한데
이는 한국의 주류 경제 질서에 대한 대안으로서 이용되는 성격이 짙다.
공산권의 붕괴 및 IMF 이후 재벌 위주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에 대한 대항 논리가 부재한 상황에서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적 사고방식이라든지 기존의 발상을 뛰어넘는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재벌들의 행태와 대비되면서 추앙을 받은 것이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인해서 국내 휴대폰 업계에서 재벌들의 독점체제가 깨진 것이 결정적이었는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일종의 희열과 희망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안철수의 등장도 아마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Founding fathers에 대한 신화화나 SNS, 잡스에 대한 신화화나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무언가 확실한 것, 완전무결한 것,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단 하나의 해답, 전지전능한 구원자를 갈구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확실한 사실도 없고, 흠결 없는 사람도 없으며, 모든 문제는 얽히고 설켜서 해답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애매하다.
전지전능한 구원자는 천상의 하느님 정도 밖에 없는데 언제 지상에 재림할지 까마득하다.

순진하게 신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이용당하기 쉽다는 것이 더 문제다.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변화시키려는 복음주의자 정치인이든,
미국을 세속적인 국가로 남기려는 진보적인 정치인이든,
SNS와 잡스를 필두로 한 IT 업계를 지원하여 미국 경제를 부흥시키려는 미국 재계, 언론계 인사든,
또 한국의 주류 세력의 대척점에 있는 정치세력(안철수?)이든...

신화를 이용하는 세력의 주장이 옳다 그르다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깊은 생각이 아닌 맹목적인 믿음이 그 주장을 지지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화의 허상을 알기 위해서는 이번 Economist의 칼럼처럼 역사와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는 너무 힘들고 머리가 아프다.
그렇기에 다들 편하게 신화에 의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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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xley vs Orwell

세상사 2011.07.18 15:24
다음에서 긁어 온 내용.
http://stalbert.tistory.com/345

Huxley의 멋진 신세계가 되고 있는 세상.
하지만 극도로 발전한 자본주의가 사회에 미치는 해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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